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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랑이야기 La belle histoire d'amour'를 부르는 파트리샤 카스. 그녀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 노래를 불렀다. 에디트 피아프가 가장 사랑했던 연인, 권투선수였던 마르셀 세르당과의 비극적인 사랑을 표현. 마르셀은 연인 피아프를 만나러 가는 길에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카스는 피아프를,
나는 카스를 노래합니다.

글. 사진. Julie Mayfeng

 


나의 뮤즈, 파트리샤 카스.
2012년 겨울, 그녀를 만났습니다.

 

 

샹송 그리고 파트리샤 카스와의 인연

 

저는 학창시절부터 샹송을 듣고 자랐습니다. 중학생 때였습니다.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카세트 테잎이 아닌 CD를 샀습니다. 그것이 파트리샤 카스의 1집 앨범 <노래하는 여인 Mademoiselle chante…>이었습니다. 그 무렵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의 ‘사랑의 찬가 Hymne à l'amour’에도 푹 빠져 있었습니다. 합창부에서 배운 곡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버리고 땅이 꺼져 버린다 해도,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두려울 것 없으리……’ 이렇게 슬픈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였습니다. 원곡이 궁금해 샹송 사이트에서 찾아 듣기도 했습니다. 멜로디도 가사도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샹송은 '詩 이상의 詩'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샹송을 좋아하게 되면서 프랑스어에도 관심이 갔습니다. 서점에 가서 프랑스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사서 공부했습니다. 그 책에는 중간 중간 샹송 가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음악을 찾아 듣고, 발음 나는 대로 가사를 적어보기도 하면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다 외우는 날에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후렴구가 유명한 샹송 ‘샹젤리제 거리 'Les Champs-Élysées’는 3절까지 있어서 전화기를 오래 붙들고 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재미를 느껴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한 샹송대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때 불렀던 곡이 파트리샤 카스의 1집에 있는 ‘내 남자 Mon mec à Moi’라는 곡이었습니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에디트 피아프를 위한 파트리샤 카스의 헌정앨범 <KAAS CHANTE PIAF>

 

2013년은 프랑스 샹송의 전설 - 노래하는 작은 참새 ‘에디트 피아프’의 타계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의미로 파트리샤 카스가 피아프를 위한 헌정앨범 <KAAS CHANTE PIAF 파트리샤 카스, 에디트 피아프를 노래하다>를 녹음했습니다. 카스는 피아프를 노래 하기 위해 피아프가 남기고 간 수백 곡의 노래를 듣고 공부했다 합니다. 피아프가 느낀 온갖 감정들을 제대로 알고 공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1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카스의 목소리로 피아프의 곡들이 녹음되었습니다. 이 음반에는 16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보석 같은 피아프의 곡들이 카스의 목소리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황홀입니다. '빠담빠담 Padam Padam'이나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과 같이 많이 알려진 곡들 외에도, 카스가 평소에 좋아했던 여러 곡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앨범은 영국의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완성되었고, 편곡은 골든 글로브상에 3번이나 노미네이트 되었던 폴란드 출신의 음악가인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Albel Korzeniowski)가 맡았습니다. 에디트 피아프의 격렬했던 삶과 사랑이 한 장의 앨범에 새롭게 압축되어 담겼습니다. 에디트 피아프와 값진 우정을 나누었던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는 '피아프 이전에 피아프 없었고 피아프 이후에도 피아프는 없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파트리샤 카스 역시도 '피아프는 오직 그녀 자신 뿐'이라며 피아프에 대한 존경을 표했습니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2012년 ~ 2013년 에디트 피아프 추모 50주년 기념 월드투어

 

헌정 앨범이 발매되던 2012년 11월 5일, 런던의 로얄 앨버트홀에서 프리미어 월드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뉴욕의 카네기홀, 몬트리올의 올림피아 극장 등 세계 11대 도시, 최고의 공연장에서 계획된 공연에, 서울의 세종문화회관도 포함되었습니다. 서울 공연을 이틀 앞둔 2012년 11월 30일, 서울 중구 봉래동 프랑스문화원에서 파트리샤 카스의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만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새벽 두 시쯤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무슨 선물을 하는 게 좋을까, 그 전부터 계속 고민을 했습니다. 그녀의 노래로 행복해하고, 고마워했으니, 마음을 담아 전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편지를 읽는 단 몇 분만이라도 그녀가 행복해하는 것.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트에 초고를 써두고 편지지를 사러 나갔습니다. 차가운 숨을 들이 마시며 겨울 아침의 모퉁이를 도는 그 순간, 귀에 익은 음악 하나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곡은 에디트 피아프의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 Non, je ne regrette rien’였습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삶이, 나의 기쁨이,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되니까요.' 노래의 가사까지 제 마음와 같았습니다. 참 묘했습니다. 음악은 문구점 옆의 가게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정성들여 편지를 옮겨 적고, 1시간 가량 일찍 프랑스문화원으로 갔습니다. 오후 세 시 반 경, 검은색 코트를 입은 짧은 금발의 파트리샤 카스가 도착했습니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방송사의 인터뷰가 문화원 도서관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그 때 카스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현실이 아닌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기자간담회 중에도 여러 번 눈이 마주쳤고, 그 때마다 미소를 보여주어 고마웠습니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도 방송 인터뷰 등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촬영한 사진들을 신문사 보도용으로 급히 올려 주어야 해서 문화원 내, 작은 사무실에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열린 문을 통해 그녀의 인터뷰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마치 그녀가 내 집 거실의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스케쥴을 마치고 호텔로 향하기 직전, 저는 대기실에서 파트리샤 카스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파트리샤, 피곤할텐데 시간 내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저는 포토그래퍼이기 이전에 당신의 오랜 팬이에요. 만나게 되어 영광이에요.” 인사를 나누며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카스는 제가 가져간 석 장의 CD에 일일이 싸인을 해 주었습니다. 싸인된 CD 쟈켓을 케이스에 다시 넣는 것을 그녀의 매니저 시릴(Cyril)이 도와주었습니다. 한 가수를 위해 20년 이상을 함께 일해온 가족 같은 사이, 신뢰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그 역시도 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싸인을 마친 그녀는 “제 공연에 오시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당연하죠.”라고 대답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서울 세종문화회관, 이틀간의 내한공연

 

12월 2일과 3일, 그녀의 내한 공연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습니다. 하루는 촬영을, 하루는 객석에 앉아 그녀의 공연을 즐겼습니다. 앨범의 11번째 트랙에 수록된 코르제니오프스키가 작곡한 ‘작은 참새를 위한 노래 Song for the little sparrow’가 흘러나오며 공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무대 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에디트 피아프와 파트리샤 카스의 이미지들이 콜라쥬 되고 있는 영상이 나왔습니다. 공연은 감동이었습니다. 함께 공연을 본 지인은 ‘인생에서 만난 다섯 개의 꿈과 같은 무대 중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있습니다. 피아프가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그대로 끌고 오면서도 카스 특유의 목소리와 창법으로, 완전히 다른 음악을 탄생시켰습니다.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녹음된 반주가 사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의 크기나 퀄리티에서 조금도 아쉬움이 없는 무대였습니다. 무대 위에는 바이올린, 키보드, 기타, 아코디언 등 심플하게 구성된 반주팀들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음악을 들려주었습니다. 완벽하게 재해석된 음악에 연극적 구성과 디지털 영상들이 더해져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 냈습니다. 파트리샤 카스의 열정이 녹아 든 노래와 연기, 무용, 매너까지 환상적이었습니다. 눈과 귀는 물론 마음이 더 행복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우디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의 주인공처럼 로맨틱한 야행을 떠났다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카스를 통해 피아프를 만났으니까요. 파리의 골목길을 함께 거닐기도 하고, 달빛 아래 춤을 추기도 하면서, 에디트 피아프가 겪고 느꼈을 감정과 마음을 헤아려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파트리샤 카스의 자서전, <L’ombre de ma voix 내 목소리의 그림자>

 

프랑스의 국보급 가수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 파트리샤 카스. 1600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고, 연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치며 세계를 누비고 있는 성공적인 삶…… 그런 그녀의 성공 뒤에 숨은 수많은 눈물 방울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1년 3월, 그녀의 자서전 <내 목소리의 그림자 L’ombre de ma voix >가 프랑스의 출판사 Flammarion에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 있는 지인을 통해 자서전을 구했습니다. 자서전은 크리스마스 날 아침 부엌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로 시작이 됩니다. 그녀는 1966년 12월 5일, 프랑스 북동부의 광산 지방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부족할 것이 없는 아주 따뜻한 가정에서 자란 카스는 여덟 살 무렵부터 수많은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다 열세 살 무렵, 한 음악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독일 자르브뤼켄(Saarbrücken)의 음악클럽 룸펠캄머(Rumpelkammer)에서 노래하면서 프로 가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녀 특유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와도 비교가 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7년간의 노래 생활을 마친 카스는, 1985년 한 건축가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오디션을 보게 되고, 첫 싱글앨범 <질투하는 Jalouse>을 발표합니다. 프랑스의 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유(Gérard Depardieu)가 제작을 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라드와의 만남은 카스의 예술가 인생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로 발표하는 싱글 앨범들이 히트를 치면서 그녀의 첫 앨범 <Mademoiselle chante… 노래하는 여인>이 성공을 하고, 그 때부터 그녀는 수많은 상들을 휩쓸게 됩니다. 이미 그녀의 성공과 관련된 굵직한 이야기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찾아볼 수 있긴 합니다만, 카스의 자서전에는 그녀 삶의 디테일한 부분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의 갈라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때가 된 것 같았어요. 과거에 이미 여러 차례 자서전을 쓰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항상 거절했었거든요.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2010년에 저를 테스트 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요. 순회 공연 직후라 너무 피곤했고, 병원 테스트에서 임신이 불가능하단 소식도 들었어요. 책 작업을 하는 건 내겐 일종의 치유 같은 것이었어요. 지금은 한결 많이 가벼워졌어요.” 그녀의 자서전은 단순히 사실들을 날짜별로 나열한 책이 아닌, 파트리샤 카스 그녀의 '영혼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파트리샤 카스, 아름다운 사람.

 

파트리샤 카스는 성공한 아티스트 이전에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녀는 아픔이 무엇인지, 고독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압니다. 카스의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가 노래할 때 부모님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행복해하던 소녀였습니다. 아버지가 동네 펍에 데리고 가셔서 “파트리샤 카스가 내 딸이야.”하시며 자랑하실 때에도 수줍어 하면서도 아버지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던 착한 딸이었습니다. 곁에서 사랑과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가 아파 누워 계실 때에도, 딸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꿋꿋하게 더 열심히 살았던 딸이었습니다. 카스의 어머니는 1989년, 그녀의 1집 앨범이 나오고 난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곡 중에 ‘마지막으로 한번만 Une dernière fois’이라는 사모곡이 있습니다. 그 곡을 들으면 저도 눈물이 납니다. ‘오, 엄마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집에서는 사랑한단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노래를 불러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사에 절절히 묻어 납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멘토였고, ‘정직’과 ‘존경’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신 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재능도 없을 것이고, 부자도 될 수 없고, 아름다운 사람도 아니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든지, 아니면 아예 홀로 있든지, 중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압니다. 자신을 찾고 돌아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원하진 않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항상 최고여야 하는 완벽함을 추구합니다. 책을 쓸 때도, 완전히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다듬고 다듬어 출간일이 늦춰지기도 했다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은 모든 것들이 완벽해서 이뤄진 건 아닙니다. 물론 그녀에겐 재능이 있었지만, 재능 이상으로 노력을 했고, 주변의 도움도 많았기에 가능했다 말합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견디고, 그 시간을 통해, 가지고 있는 것들,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된 파트리샤 카스. 그녀의 음악 인생 25년은 가수로서의 음악적 성공뿐만 아니라 그녀를 더욱 아름다운 사람, 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음에도 자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 가능하다면, 덜 성공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삶을 성취하고 싶다는 사람. 고독을 즐기면서도, 언제나 사랑할 여유는 남겨 둔다는 그녀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신을 믿나요?"
"아뇨, 저는 사랑을 믿어요."

 


 

Patricia Kaas ⓒ Julie Mayfeng

 

 

얼마 전 그녀가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제게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I love your photos… Thank you Julie.
Patricia.

 

오랫동안 사랑했던 예술가를 만나고,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 생애 큰 영광이었습니다.
파트리샤, 당신을 존경합니다.
예술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앞으로도 당신의 예술과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Julie Mayfeng

 

 

현대음악매거진 뮤직프렌즈 2013년 1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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