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inspiration/문장들 2014. 6. 2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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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나 카르타

ㅡ선언하면서 동시에 절규할 수 있다면

 

 

아침부터 썩어 있을 권리가 있고

하루를 구토로 시작할 권리가 있소

매사에 무능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알아듣는 것을 나만 못 알아들을 권리가 있소

껌껌한 콘크리트 방주를 타고 밤마다 대홍수의 꿈을 꿀 권리가 있소

머리 위로 똥덩이가 둥둥 떠다니는 꿈을 밤마다 꿀 권리가 있소

에미 애비도 몰라볼 권리가 있고 딱 오 분만 모친의 부고(訃告)를 즐길 권리가 있소

곡(哭)을 하면서 다리를 떨 권리가 있고 병풍 뒤에서 휘파람을 불 권리가 있소

파니스 안젤리쿠스를 페니스 안젤리쿠스로 번번이 고쳐 들을 권리가 있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음을 할 권리가 있소

수음을 하면서 숨이 끊어질 권리가 있소

더이상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젓가락 행진곡만 삼십 년을 칠 권리가 피가 나도록 칠 권리가 있소

단고기를 입에 물고 있으면서도 단고기 생각을 할 권리가 있고

착잡하게 시작해서 찜찜하게 끝을 볼 권리가 있소

소리만 철퍽대다 끝낼 권리가 있소

인생을 바꾸려고 하루 오백 번 항문을 조일 권리가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을 대줄 권리가 있소

먼눈이 또 멀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 발가락으로 젓가락질을 할 권리가 있소

대공원의 비둘기가 내 정수리에 버젓이

똥을 눌 권리가 있는 것처럼

 

 

김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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