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서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에너지가
사후까지 살아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나는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 땅 위에다가 다 표현한 다음
흡족한 마음으로 더 바랄 것 없이 완전하게 ‘절망하여’ 죽기를 ‘희망’한다. p.23
나타나엘이여, 우리가 일부러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뿐이다.
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타나엘이여,
그대가 이미 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을 뜻한다.
신을 행복과 구별하여 생각하지 말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아라. p.35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p.35
지상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 나타나엘이여, 그것은 나의 굶주림이니.
저를 기다리는 모든 것에
굶주림은 언제나 충실하였다. p.43
행복의 순간들을 신이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ㅡ 그럼 다른 순간들은 신이 아닌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나타나엘이여, 신과 그대의 행복을 구별하지 말라. p.46
나타나엘, 내 그대에게 ‘순간들’을 말해 주리라.
그 순간들의 ‘현존(現存)’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깨달았는가?
그대가 그대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까지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꾸준한 생각을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이를테면 지극히 캄캄한 죽음의 배경 위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런 기막힌 광채를 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p.54
인간이 영혼과 한번 접하게 되면
영혼은 그를 어린애처럼 순수하게 만드는 법이다. p.71
죽기 전에 그 자신의 영혼을 소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다. p.71
부유한 자에게,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굳어버린 쾌락주의자에게,
사물에 노예가 되어 자유를 낭비해 버린 자들에게,
보드라운 값비싼 옷을 입고 왕궁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더욱더 연민의 정을 품었던 것이다.
그에겐 부귀와 쾌락이
가난이나 슬픔보다도 오히려 더 큰 비극으로 보였던 것이다. p.72
시인의 재능: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 p.101
새벽도 되기 전 박명 속에서의 끔찍한 출발들.
오들오들 떠는 영혼과 육체. 어지러움.
아직도 가지고 갈 만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ㅡ 메날크여, 떠남에서 그대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는 대답한다 ㅡ 미리 느껴지는 죽음의 맛이라고.
꼭 다른 무엇인가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게 불가결한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떠나자는 것뿐이다.
아! 나타나엘이여, 없어도 되는 것들이 그 밖에도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의 유일하고 진정한 소유인 사랑, 기대,
그리고 희망으로 마침내 가득 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헐벗지 못하는 영혼들. p.119
그 여자는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별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저 모든 별들의 이름을 알아요.
저마다의 별에는 여러가지 이름이 있지요.
별들은 각기 다른 덕목들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눈에는 고요해 보이는 저들의 운행은 빠르고
그래서 별들이 타는 듯이 뜨거워지는 것이랍니다.
저들의 불안하고 뜨거운 열 때문에 별들은 급격하게 움직이고
그 결과 찬란하게 빛나지요.
어떤 내밀한 의지가 저들을 충동하고 인도하고 있어요.
저들은 미묘한 열광에 불타올라 마침내 타버려요.
그래서 별들이 휘황찬란하고 아름다운 거예요.”
"별들은 모두가 서로서로 그들의 미덕이요 힘인 어떤 유대에 의하여 이어져 있지요.
그래서 하나의 별은 다른 별에 의존하고 다른 별은 또 모든 별에 의존하지요.
각자의 길이 정해져 있어서 각자는 제 길을 찾지요.
각각의 길은 각각의 다른 별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저마다의 별은 길을 바꿀 수가 없어요.
그러면 다른 별을 혼란에 빠뜨릴테니까요.
그리고 각각의 별은 그가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 것에 따라 자기 길을 택하지요.
그 별은 반드시 택해야 하는 것을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숙명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길이 각각의 별에게는 그가 선호하는 길이지요.
저마다의 길은 완전한 의지에 따른 것이니까요.
어떤 눈부신 사랑이 별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이 법칙을 확정하게 되니 우리는 그 법칙에 좌우됩니다.
우리는 도망갈 길이 없어요.” p.198-200
인생이란 사람들이 동의하는 거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지혜는 이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아! 나는 오늘날까지 너무 조심스럽게 살았다.
새로운 법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법 없이 살아야 한다.
오, 해방이여! 오, 자유여! 나의 욕망이 다다를 수 있는 곳까지 나는 가리라.
오, 내가 사랑하는 그대, 함께 가자꾸나, 그곳까지 그대를 데리고 가리라, 그대가 더욱 멀리 갈 수 있도록. p.214
이 땅 위에는 너무나 많은 가난과 비탄과 어려움과 끔찍한 일들이 가득해서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행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행복해질 수 없는 자는 남의 행복을 위하여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 속에 행복해야 할 절박한 의무를 느낀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에게서 빼앗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행복은 가증스럽게 여겨질 뿐이다.
(중략)
나로서는 배타적인 소유에 대해서는 늘 혐오감을 느꼈다.
나의 행복은 오로지 증여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죽음도 내 손에서 빼앗아 갈 것이 별로 없다.
죽음이 내게서 앗아갈 수 있는 것이란
기껏해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손에 넣을 수도 없는 자연적인 재물,
만인이 다 가질 수 있는 재물 뿐이다.
특히 그런 것들이라면 나는 물릴 정도로 만끽했다.
그밖에 나는 가장 잘 차린 산해진미보다는 주막집의 식사를,
담장을 둘러친 가장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공원을,
희귀본보다는 산책 갈 때 마음 놓고 들고 다녀도 좋은 책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예술 작품을 오직 나 혼자서만 감상해야 한다면
그 작품이 아름다울수록 즐거움보다는 슬픔이 앞설 것이다.
나의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나 자신이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p.237-239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