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초월한 감성... "Amazing Grace!"
재즈 뮤지션 Grace Kelly
“2006년 여름 처음 그레이스를 만났을 때 그녀의 재능과 성숙함에 깜짝 놀랐어요. 최근에 재즈 페스티벌(Pittsfield Jazz Fest)에서 재즈 앰배서더스 재즈 밴드와 함께 연주를 하며 'I’ll Remember April' 등을 함께 연주했죠. 그녀의 소리가 어땠냐고요? 내 모자를 그레이스에게 주었다면 대답이 될까요? 그 정도로 소리가 좋았어요! 지금까지 내 모자를 받은 알토 색소폰 연주자는 그녀뿐이죠. 앞날에 축복과 환호가 있기를!” - 색소포니스트 필 우즈(Phil Woods) 지난 3월말 少女의 생애 첫 내한 공연을 위해 고국 땅을 밟은 그레이스 켈리를 만났다.
글 쥴리메이펑 / 사진 김병관, 쥴리메이펑 / 촬영협조 Theother(디아더), Jazz Story, 쇳대 카페
Grace Kelly ⓒ Julie Mayfeng
그래미 애프터 파티에 초대된 15세 동양인 소녀
재즈계에 새롭게 떠오른 이름,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재즈 알토 색소포니스트 겸 보컬리스트. 지난 2월 10일, 제50회 그래미상 시상식 축하파티에 초청되어 깁슨·볼드윈 그래미 재즈 앙상블(Gibson·Baldwin Grammy Jazz Ensemble)과 함께 연주하여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국계 소녀.
그녀는 1992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미국인 아버지의 성을 따라, '그레이스 정'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되었다. 6세 때 클래식 피아노를, 10세 때 색소폰 레슨을 시작했고, 클라리넷, 플루트, 드럼, 베이스도 연주한다. 2006년 <다운비트> 매거진 스튜던트 뮤직 어워즈(Downbeat Magazine Student Music Awards)의 재즈 솔로이스트, 팝·록·블루스 솔로이스트, 작곡, 보컬 등 네 개 부문 우승, 2007년 동대회에서 ‘Summertime’으로 편곡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6년 이스트 코스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미시 미들턴 재즈 스칼라십(Mish Middleton Jazz Scholarship)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또한 미국음악가협회(ASCAP)가 수여하는 2007년 ‘젊은 재즈 작곡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8년에도 같은 상을 수상했다. 리 코니츠, 필 우즈 등 세계 재즈계의 거장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협연 및 레코딩을 해왔고, 카네기홀, 케네디센터, 보스턴 심포니홀 등 미국 주요공연장과 유럽 등지에서 상당수의 순회 연주를 가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그레이스는 12세 때 유명한 카바레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인 앤 햄튼 캘러웨이(Ann Hampton Callaway)를 만나게 되었는데, 앤은 알토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그레이스가 가진 음악성과 집중력 등에 감탄했다고 한다.
지난 3월말, 그레이스가 한국을 찾았다. <시민일보>와 서울시교육청 주최 장애우 인식개선 및 청소년 자살예방을 위한 자선 캠페인 <Hoping For> 콘서트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레이스는 아주 흥분된다는 말로 첫 한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음악으로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이에요.” 여러 대중 매체에서 재즈천재, 재즈신동으로 소개되고 있는 그레이스.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저는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단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얻은 감사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Grace Kelly's saxophone ⓒ Julie Mayfeng
스탄 게츠의 색소폰 소리에 매료된 그레이스 켈리
그레이스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다. 같은 걸 반복하는 것과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즉흥적이고 독창적인 연주가 좋았던 그녀는 그러한 이유로 재즈를 택한 것이다. 7세 때 ‘On my way home’을 작곡했고, 이 곡은 그레이스가 12세 되던 해에 1집 <Dreaming> 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레이스는 각종 악기 연주와 더불어, 작곡, 편곡, 노래까지 직접 하는 그야말로 팔방미인 아티스트.
그레이스의 음악적인 재능엔 유전적인 영향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까. 그레이스의 외할머니는 피아니스트, 이모는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역시 음악 공부를 하셨던 분이고, 어머니의 삼촌도 한국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 중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각종 공연을 접했고, 자연스럽게 음악적인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음악과 친해지고 교감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았다. 그레이스는 어떤 노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피아노나 기타로 연주를 해보고, 컴퓨터를 통해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들어보며 끊임없이 창작을 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고,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면서 놀았어요. 몇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연기도 하고… 피아노 연습을 하라고 하면 10분 연습하다가 연습을 그만두고 노래를 만들었죠. 무척 창의적인 아이에요.”라고 그녀의 어머니는 말한다.
9살이 되던 해, 그레이스는 스탄 게츠(Stan Getz)의 색소폰 소리에 매료되고 말았다. 따뜻한 알토 색소폰에 빠져버린 그레이스는 10살이 되던 해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레슨 6주 만에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레이스는 색소폰 중에서도 알토 색소폰을 연주한다. 알토 색소폰은 테너나 바리톤 색소폰에 비해 크기가 작아 여자가 연주하기에 부담이 없는 크기. “알토 색소폰의 가장 큰 매력요? 사람의 목소리를 닮았어요!” 올해로 54년이 되었다는 그녀의 알토 색소폰은 칠이 벗겨져 얼룩덜룩한 모습이었지만, 음악을 향한 그녀의 열정처럼 깊은 소리를 냈다.
그레이스는 2005년부터 레코딩을 시작해 2006년, 2007년에 음반 3장을 미국에서 발매했으며, 현재 3장의 앨범을 준비 중에 있다. 하나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자작곡과 편곡한 곡들을 실은 앨범을, 하나는 색소폰의 거장 리 코니츠(Lee Konitz)와 함께 재즈 마스터 앨범을, 마지막 하나는 Duo 앨범으로 맷 윌슨(Matt Wilson), 러셀 마론(Russell Malone), 루퍼스 레이드(Rufus Reid), 케니 배론(Kenny Barron) 과 함께 부른 곡들을 실어 발표할 예정이다. 그레이스는 자신의 나이보다 2~3배 이상 많은 음악가들과 밴드를 만들었다. 그레이스의 선생님이기도 한 그들은 피아노 - 더그 존슨(Dug Johnson), 드럼 - 테리 린 캐링턴(Terri Lyne Carrington), 베이스 - 존 락우드(John Lockwood)로 구성되어 있으며, 함께 LA 재즈 베이커리에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오는 5월 15일에는 켈리 콰르텟(Quartet)으로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공연하게 되는데, 그 날은 그레이스의 16번째 생일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Grace Kelly ⓒ Julie Mayfeng
그레이스의 삶, 그레이스의 음악
“지금 10학년이에요.” 그녀는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주중에는 학교생활과 레슨을, 주말에는 색소폰, 작곡, 편곡, 보컬 등의 레슨을 받아요. 집에 오면 9시. 하루 종일 음악과 함께 지내는 셈이죠.” 그레이스는 뉴잉글랜드 음악학교(New England Conservatory Preparatory School)와 브루클린 음악학교(Brookline Music School)의 수료 과정(certificate program)을 모두 마쳤으며, 뉴잉글랜드 음악학교 사상 재즈학 4년 과정을 모두 마친 최연소 학생이 되었다. 그레이스는 올 해 9월이 되면 보스톤의 버클리 음대에 진학한다. 또래 친구들보다 2년 앞서 월반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은 재즈 트럼펫터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에요. 그는 비밥, 쿨, 퓨전까지 다 연주했죠. 저도 다 좋아해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요. 제게 영향을 준 뮤지션으로는 리 코니츠(Lee Konitz), 폴 데스몬드(Paul Desmond), 스탄 게츠(Stan Getz),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다이앤 리브즈(Dianne Reeves), 프랭크 모르간(Frank Morgan), 필 우즈(Phil Woods), 스티브 윌슨(Steve Wilson), 조지 케이블(George Cables), 아트 페퍼(Art Pepper),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사라 본(Sarah Vaughn),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비틀즈(Beatles) 등이 있어요.” 그녀는 무대 위에 마법 같은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다 보면 마법의 시간(magical moment)을 느낄 수 있어요. 관객이 반응할 때 말이에요. 저는 그 시간을 좋아해요. 제게 있어 좋은 연주란 그 시간을 즐기는 거에요.”
정말 그랬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Hoping For> 콘서트에서 그 시간을 만끽하는 그레이스를 볼 수 있었다. 왼쪽발로 리듬을 맞춰가며, 온몸으로 발산하는 음악적 끼와 재능에 관객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달콤한 보이스로, 그레이스 켈리만의 재즈를 노래했다. 나이를 초월한 감성. 그것은 분명 천부적이었다. 그러나 천부적인 감성, 그 안에 숨은 그녀의 노력이 더 빛나던 순간이었다.
가족의 끝없는 후원과 지지, 그레이스의 열정과 노력
“제 자신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어요.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이러한 지지와 후원은 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 원동력이었어요.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부모님이 계신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 생각해요.” 라며 부모님의 지원이 음악을 하는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되었음을 밝히는 그레이스. 취재 내내 옆에 함께한 그녀의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밥 켈리(Bob Kelly)씨는 “부모가 원하는 삶을 내 아이들이 사는 게 아니라, 내 아이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라며 자녀 교육에 관해 철학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레이스의 공연 스케쥴은 10월까지 빽빽하게 잡혀있다.
부담스럽거나 힘겨울 때도 있을 법한데. “아무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순 없잖아요.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죠. 물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전 음악을 나누는 것만이 제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종국에 깨닫게 되죠. 계속해서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할 거에요." 그레이스가 여러분께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이러하다. "혹 절망적일 때가 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여러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누군가를 바로 내일 만날지도 몰라요.”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그레이스의 이런 노력과 열정이라면 그래미상 시상식 축하파티에서가 아닌 그래미상 재즈 필드에 노미네이트되는 그녀를 내일에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레이스가 지금처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꿈을 먹고 사는’ 재즈계의 아름다운 별로 영원히 기억되어가길 바란다.
“그레이스의 세 번째 CD를 들어보았는데 정말 좋아요. 이 지구상에 겨우 14년 밖에 살지 않은 아이인데 그런 귀와 가슴을 가졌다니! 그녀의 알토 색소폰 소리는 아름답고 게다가 사랑스러워요! 레스터 영이 그녀에게 노래를 한 곡 불러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레이스는 노래를 했죠. 정확한 리듬, 멋진 편곡, 넘치는 독창성. 이렇게 미치게 노래를 잘 부르다니! 뭘 더 부탁할 수 있었겠어요?” - 알토 색소포니스트 리 코니츠(Lee Konitz)
“그레이스는 스윙, 사운드, 진정한 임프로비제이션의 본질에 접근하는 법을 알고 있어요. 그녀가 연주를 하든, 노래를 하든, 아니면 작곡을 하든 이 본질은 빛이 나요.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표시지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면모를 가지고 있어요. 전 그레이스가 앞으로 올 음악계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확신해요.” - 트럼페터 랜디 브렉커(Randy Brecker)
현대음악매거진 뮤직프렌즈 2008년 5월호 기고